펀치 드렁크 러브 (Punch-Drunk Love, 2002)


나의 영화 취향은 장르를 가리지 않는 편이지만, 로맨스를 꺼리는 경향이 있다. 남녀 간의 절절한 사랑이 나에게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나에게도 로맨스의 명작으로 꼽을만한 영화가 몇 편 있는데 바로 스파이크 존즈의 그녀와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비포 시리즈이다. 로맨스에 현실감을 한 스푼, 그리고 씁쓸함을 두 스푼 추가한 영화가 취향이라고 할까.


그렇게 쓸쓸한 로맨스를 사랑하던 나에게 펀치 드렁크 러브가 찾아왔다. 어쩌면 내가 사랑한 첫 번째 달달한 로맨스 영화라고 볼 수도 있겠다. 물론 마냥 달달하기만 한 건 아니다.



배리 이건은 불안정한 내면을 가진 사람이다. 언틋 멀쩡한 사업장을 운영하고 있는 사업가로 보이지만, 일곱명의 누나, 여동생에게 치여가며 살아서인지 아니면 선천적인 문제인지 언행이 여간 부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다. 거기다 소심하기까지 해서 여자 형제들의 등쌀에 이리 저리 치이면서도 단호하게 거부하지 못하고, 그러다 폭발하면 갑자기 창문을 깬다던지, 주위의 기물을 파손하는 등의 폭력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치과의사인 매형에게 가끔 이유 없이 울고싶다는 이야기를 하며 갑자기 울음을 터트릴 때는 우울증인가 싶기도 하다. 이러한 배리의 불안한 정신 상태는 영화를 괴팍스럽고 혼란스럽게 만든다.



하지만 배리에게 아주 특별한 사랑이 찾아 오면서 영화의 분위기는 점차 사랑스럽게 변화한다. 그에게 사랑은 한 번도 시도해보지 못하고 꿈꿔보지 못한 일들을 결행하게 만드는 마법과도 같은 일이다. 여행을 다녀 본 적이 없지만 그녀를 만나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그녀를 지키기 위해 악당을 물리치는 슈퍼 히어로가 되기도 한다. 물론 말도 안되는 이야기이다. 양아치들에게 벌벌 떨던 그가 그들의 보스를 찾아가서 당당하게 사랑 때문에 나는 네가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강해졌다고 외치는 부분은 우스꽝스럽기 까지 하다. 그렇지만, 정말로 머리를 세게 얻어 맞아서 펀치 드렁크 증후군에 걸리기라도 한 듯 이 모든 말도 안되는 상황이 말이 되게 느껴지는 것이 이 영화의 마력이다. 


"I have a love in my life. It makes me stronger than anything you can imagine."


오프닝 시퀀스부터 감각적이다.


그저 그런 사랑 이야기를 가지고 보는 사람을 이토록 얼떨떨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은 눈 앞에서 수천개의 불빛이 점멸하는 것 같은 감각적인 연출로 정신이 불안정한 남자와 그가 사랑에 빠지는 순간을 그려낸 PTA의 천재적인 연출과 인물들의 내면을 그대로 들여다 보는 듯한 사운드트랙 덕분인 것 같다. 나는 그 중에서도 영화의 사운드트랙에 완전히 매료되었는데 신경을 긁어내리는 듯한 배리의 테마곡이 등장하면  나 또한 그와 같은 스트레스를 겪었고, 그녀가 등장하고 he needs me가 흘러 나올 때면 나 역시 그와 그녀를 향한 참을 수 없는 사랑스러움을 느꼈다.


가끔 인터넷에서 너무 귀여워서 건물을 부수고 싶다는 글을 보면 저게 무슨 소리인가 싶었는데, 펀치 드렁크 러브가 바로 그렇다. 벽을 마구 때리고 창문을 부수고 싶게 만드는 사랑스러움을 지닌 영화이다. 이런 로맨스라면 24/7 언제든지 볼 수 있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