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도 들을 시간이 없을 만큼 바쁘게 지내는 것은 아닌데, 이상하게도 좀처럼 여유가 생기지 않는 요즘. 나는 주로 잠자리에 누워서 음악을 즐겨 듣는 편이다. 그렇다 보니 마냥 흥이 나는 음악보다는 차분하고 신비로운 분위기의 음악들을 플레이 리스트에 남겨두는 편인데, 그 중에서도 가장 자주 듣는 곡이 바로 Spiritualized의 Ladies And Gentlemen We Are Floating In Space 이다.


우리는 지금 우주에 있다고 나지막히 속삭이는듯한 목소리로 시작하는 이 노래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어느새 제목 그대로 저 넓은 우주를 유영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히고 만다. 그리고 그렇게 스르륵 잠이 드는 것이 최근들어 생긴 나를 행복하게 하는 취미 중 하나이고 말이다. 약간의 과장을 보태면 푹신한 침대에 누워 잠이 들락 말락하는 몽롱한 상태에서 듣는 Ladies And Gentlemen We Are Floating In Space는 천국과도 같이 평화롭고 아름답다.




처음 듣는 사람들에게도 이 곡이 낯설지 않은 이유는 Pachelbel의 Canon in D 와 Elvis Presley의 Can't Help Falling In Love 이라는 클래식한 명곡들을 샘플링하였기 때문이다. 이제 Spiritualized의 Ladies And Gentlemen We Are Floating In Space가 우리 시대의 클래식으로 남을테니, 클래식이 클래식을 만들어낸 셈이다.


Spiritualized의 <Ladies And Gentlemen We Are Floating In Space>, Radiohead의 <OK Computer>, The Verve의 <Urban Hymns>, Blur의 <Blur>가 모두 한 해에 발매되었다는 그 시절의 영국은 대체 어떤 나라였을까 궁금하다. 사람 사는 곳은 물론 다 거기서 거기겠지만 더쿠로써 자연스럽게 드는 살아볼 수 없는 시절에 대한 그리움은 어쩔 수 없는 일인가 보다.


You met me at a very strange time in my life.


그래서 "나는 물고기와 대화를 하려고 하는 정신나간 인간입니다"라는 것이 이 가사의 내용인 것인지, 아니면 "난 정신나간 인간이여서 물고기와 대화를 시도하기도 하고, 내 머리를 깨먹기도 합니다"하는 것이 주된 내용인지 잘 모르겠지만(사실 어느쪽이여도 정신나간 가사이긴 하다.) 그까짓 노랫말이 뭐가 그리 중요하겠는가. 중요한 것은 이 곡이 가진 분위기와 감정, 느낌이다. 말도 안되는 소릴 지껄이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렇게나 강렬한 임팩트를 가지고 있는 곡이라면, 구태여 단어 하나하나에 대단한 의미를 부여하고 숨은 뜻을 찾아 애쓸 필요가 없지 않을까.



이 노래를 듣는 가장 좋은 타이밍은 내가 미친 것인지, 아니면 이 세상이 미친것인지 잘 구별이 되지 않는 순간이다. 온갖 잡음으로 머리 속이 복잡할 때 이 노래를 들으면 내가 혼란스럽게 여겼던 모든 것들이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으로 느껴지면서 상황에 순응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덧붙이자면 영화 <파이트클럽>의 엔딩 장면에 이 곡을 삽입한 것은 진정한 신의 한 수 였다. 음악과 영화 서로가 서로에게 임팩트를 더해준 아주 좋은 예로, 이보다 그 영화에 적합한 곡은 아마 찾을 수 없을 것이다. Where Is My Mind?를 듣고 있다 보면 무너져내리는 건물들을 바라보고 서 있는 '그'와 말라의 모습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그냥 내가 듣고 싶어서 올리는 노래 모음이 되시겠다. 전에 이와 거의 비슷한 구성으로 네이버 뮤직의 JAMM LIST를 만들었던 적이 있는데, 대체 JAMM LIST를 만들어서 받는 포인트는 뭐에 쓰는 걸까. 그걸로 음원이라도 구입할 수 있는건가 하고 봤더니 그런 것도 아닌 것 같고. (사용처를 아시는 분들의 제보를 받습니다.)


우리나라 노래를 즐겨 듣지 않은지 수년이 되어서 요즘 인기있는 K-POP은 없지만, 그래도 나름 POP, ROCK, ALTERNATIVE, ELECTRONIC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이 반영된 밸런스형 플레이 리스트라고 자부한다. 온갖 장르의 찰랑찰랑한 곡들을 듣고 싶을 때 딱 맞는 플레이 리스트라고나 할까.


그나저나 여름 언제 끝나냐.







날씨가 따뜻해 지고 슬슬 봄 바람이 불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찾게 되는 음악들이 있다. 아마 이 분야에서 가장 크게 명성을 떨치고 있는 것은 버스커버스커의 벚꽃엔딩일 것이다. 벚꽃엔딩의 어마어마한 성공과 함께 매년마다 음악 차트에는 새로운 봄 캐롤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그에 필적할만한 성과를 보여준 곡은 없었던 것 같다. 여기까지는 국내의 사정으로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는 식상한 이야기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가사에 사쿠라가 들어간다던지, 어딘지 모르게 봄 분위기를 풍기는 곡들을 추려서 뻔하다고 말하면서도 봄이되면 어김없이 찾아 듣게되는 일본의 봄 캐롤에 대한 포스트를 작성해 보기로 했다. 하기의 리스트는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감상에 의해 작성된 것으로 다수의 의견과 맞지 않을 수 있으니 참고해 주기를 바란다.





1. 春よ、来い(봄이여, 오라) - 松任谷由実(마츠토야 유미) 



春よ 遠き春よ 瞼閉じればそこに

봄이여 아득한 봄이여, 눈을 감으면 바로 그 곳에




2. アロエの花(알로에의 꽃) − 大比良瑞希(오오히라 미즈키)



片耳ずつ聞いたメロディ 久しぶりに口ずさめば

한 쪽 씩 나눠 들었던 멜로디를 오랜만에 흥얼거려 보면

悩みは消えて行きそう

고민들은 모두 사라져 버릴 것만 같아




3. キラキラ(반짝반짝) -  aiko



風になってでも あなたを待ってる
바람이 되서라도 널 기다리고 있을거야
そうやって 悲しい日を超えて來た

그렇게 슬픈 날들을 이겨내 왔어



4. SAKURA - いきものがかり(이키모노가카리)



さくら ひらひら 舞い降りて落ちて
벚꽃은 하늘하늘 춤추며 떨어지고
春のその向こうへと歩き出す
봄의 저 편을 향해 걷기 시작해




5. 春の歌(봄의 노래) - スピッツ(스핏츠)



歩いていくよ サルのままで孤り
걸어가자 마음가는대로 혼자서



6. 桜木町(사쿠라기쵸) - ゆず(유즈)



初めて君と口付けた櫻木町で最後の手を振るよ
처음으로 너와 입맞췄던 사쿠라기쵸에서 마지막으로 손을 흔들어




7. 桜色舞うころ(연분홍 빛 춤출 무렵) - 中島美嘉(나카시마 미카)



やがて季節はふたりを  どこへ運んでゆくの

이윽고 이 계절은 우리 두 사람을 어디로 데려가는 걸까




8. 桜Color(벚꽃 Color) - GReeeeN



咲くのならばこの街で そう決めて 見上げた 桜

피어날 거라면 이 거리에서, 그렇게 마음먹고 올려다 본 벚꽃




9. 桜の花びらたち(벚꽃잎들) - AKB48




桜の花びらたちが咲く 頃
벚꽃 잎들이 피어날 때

目の前の大人の階段 一緒に登って手を振ろう
눈앞의 어른으로의 계단을 함께 올라가 손을 흔들자




10. 明日、春が来たら(내일 봄이 온다면) - 松たか子(마츠 타카코)


明日、春が来たら君に逢いに行こう 
내일 봄이 온다면 너를 만나러 갈거야 




"I want to be a child star, mom!"을 외쳤던 꼬마들이 어느새 이렇게 자라서 나의 마음을 흡족하게 만드는 앨범을 만들어 내다니, 혈연 관계에 있는 것도 아닌데 마치 랜선으로 키워낸 조카들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2000년대 초중반에 니켈로디언에서 방영한 모큐멘터리 시리즈인 <The Naked Brothers Band>의 주인공이었던 Wolff 형제는 어느 순간 이제는 어린 시절을 졸업하고 진정한 어른의 모습을 모여주기라도 하겠다는 듯이 The Naked Brothers Band라는 이름을 버리고 Nat & Alex Wolff로 새로 태어났다. (밴드 이름이 변경된 주요 이유는 아마도 어른들의 사정이겠지만, 결과적으로는 좋은 결정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에 맞추어 그들의 음악 역시 전형적인 Teen Pop에서 Rock을 베이스로 한 조금 더 거칠고 어른스러운 사운드로 변모하였다. "I don't want to go to school."에서 "Did you tell him all our shit?"이라니, 이만하면 꽤 훌륭한 성인식이 아닌가.


청소년기에 니켈로디언과 디즈니채널을 즐겨본 나는 그 시절의 스타들의 거취에 관심이 많은 편인데, 대부분 어릴 때 반짝 인기를 얻고 그들을 스타로 만들어준 쇼가 종영되면 그와 함께 조용히 커튼 뒤로 사라지는 느낌이어서 마음이 좋지 못했다. 그러던 와중에 이렇게나 나의 취향을 저격하는 작업물을 보여주는 친구들이 등장해서 정말 기쁘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앞으로 더욱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내서 자신들의 능력이 어린 시절의 한때 뿐이 아니라는 것을 많은 리스너들에게 보여주는 멋진 아티스트로 성장해 준다면 좋을 것 같다.


덧. Nat & Alex Wolff가 영향을 받은 아티스트들을 살펴 보니 이 친구들이 어떻게 나의 취향을 저격할 수 있었던 것인가에 대한 해답이 나왔다. The Beatles, Nirvana, The Killers, Weezer, Coldplay....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I keep rolling around this town, rolling around this town

But nobody wants to see me, nobody wants to see me

I'm bringing 'em down





기분이 다운되는 날에는 시끄러운 음악을 듣고 싶지 않아 진다. 남의 속도 모르고 광광 울려대는 음악들이 예전처럼 신나게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조금 다른 노래를 들어볼까 하고 스포티파이의 플레이리스트를 돌고 또 돌다가 발견한 것이 Seoul의 I Becaome A Shade였다. 내가 나고 자란 고향이 지구 반대편에서 활동 중인 어느 밴드의 이름으로 사용되고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기 때문에 처음에는 Soul을 잘못 본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아무리 눈을 비비고 다시 보아도 Seoul은 Seoul이었다.


밴드의 이름은 정말 익숙하고 친근하지만 국적은 캐나다이고, 거기다 음악은 몽환적인 분위기의 드림 팝이어서 저절로 왠지 모를 괴리감이 느껴졌다. 그래서 결국 이 짤을 떠올리고야 말았다...!





Seoul의 음악을 듣다 보니 문득 떠오른 것이 있다. "캐나다 사람들인데 왜 밴드 이름은 서울로 지은거지?"

친절한 구글로 부터 이 의문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있었다. 사실 Seoul의 멤버들은 한 번도 한국에 와 본적이 없고, 그렇기 때문에 도시 서울로부터 어떤 영감을 받은 것은 아니라고 한다. 다만, 추구하는 음악이 도시적인 것이기 때문에 도시 이름을 밴드명으로 짓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 중 Seoul이 영혼을 의미하는 Soul과 어감이 비슷한데다 고독을 나타내는 Sole과도 어감이 비슷해서 마음에 들었다는 것. 


그러고 보니 내가 들었던 Seoul의 음악에서는 왠지 모를 도시의 적막이 느껴지곤 했다. 화려하고 세련된 도시의 이면에 감추어진 끝없는 어둠과 고요함이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스포티파이에 등록된 수 많은 음반들 중에서 <I Become A Shade>가 울적한 내 마음을 끌어당겼던 것이 아닐까.


<I Become A Shade>의 수록곡 I Become A Shade



2010년대에 등장한 밴드 답지 않게 Seoul은 SNS를 비롯한 각종 소셜 미디어에 본인들을 직접적으로 노출하는 것을 꺼리는 듯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그 때문에 밴드의 근황이나 정보를 쉽게 얻기 어려워서 조금 불편하긴 하지만, 외향이나 사생활이 주는 이미지 보다는 먼저 음악을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그들의 생각은 오디오 보다는 비주얼이 더욱 각광받는 오늘날의 사회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는 나의 마음을 부드럽게 달래 준다.


<I Become A Shade>의 수록곡 Stay With Us


<I Become A Shade>의 수록곡 Haunt / A Lig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