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동안 심심해서 2012년 런던 올림픽 폐막식을 다시 봤는데, 노년의 에릭 아이들이 Always look on the bright side of life를 부르는 장면이 나왔다. 나에게는 아주 생소한 노래였는데 경기장에 있는 수 많은 사람들이 즐거운 표정으로 후렴구를 따라 부르는 것이 신기했고, 그것이 인상에 남아서 이 노래가 등장하는 <몬티 파이선과 브라이언의 삶>이라는 영화까지 보게 되었다. 올림픽에서 에릭 아이들이 부르는 것을 들었을 때는 마냥 희망적인 곡이라고 생각했는데, 영화를 보고 나니 삶에 대한 찬가라기 보다는 오히려 고난의 시기에 마저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휘파람을 불자고 말하는 긍정충을 돌려까는 뉘앙스여서 조금 당황스러웠다. 그렇지만 나는 듣고 싶은데로 듣고 생각하고 싶은대로 생각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전혀 신경쓰지 않고, 인생이 나에게 빅 엿을 날리는 것 같은 날 이 노래를 들을 계획이다. 


그리고 그게 바로 지금이다.





음악도 들을 시간이 없을 만큼 바쁘게 지내는 것은 아닌데, 이상하게도 좀처럼 여유가 생기지 않는 요즘. 나는 주로 잠자리에 누워서 음악을 즐겨 듣는 편이다. 그렇다 보니 마냥 흥이 나는 음악보다는 차분하고 신비로운 분위기의 음악들을 플레이 리스트에 남겨두는 편인데, 그 중에서도 가장 자주 듣는 곡이 바로 Spiritualized의 Ladies And Gentlemen We Are Floating In Space 이다.


우리는 지금 우주에 있다고 나지막히 속삭이는듯한 목소리로 시작하는 이 노래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어느새 제목 그대로 저 넓은 우주를 유영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히고 만다. 그리고 그렇게 스르륵 잠이 드는 것이 최근들어 생긴 나를 행복하게 하는 취미 중 하나이고 말이다. 약간의 과장을 보태면 푹신한 침대에 누워 잠이 들락 말락하는 몽롱한 상태에서 듣는 Ladies And Gentlemen We Are Floating In Space는 천국과도 같이 평화롭고 아름답다.




처음 듣는 사람들에게도 이 곡이 낯설지 않은 이유는 Pachelbel의 Canon in D 와 Elvis Presley의 Can't Help Falling In Love 이라는 클래식한 명곡들을 샘플링하였기 때문이다. 이제 Spiritualized의 Ladies And Gentlemen We Are Floating In Space가 우리 시대의 클래식으로 남을테니, 클래식이 클래식을 만들어낸 셈이다.


Spiritualized의 <Ladies And Gentlemen We Are Floating In Space>, Radiohead의 <OK Computer>, The Verve의 <Urban Hymns>, Blur의 <Blur>가 모두 한 해에 발매되었다는 그 시절의 영국은 대체 어떤 나라였을까 궁금하다. 사람 사는 곳은 물론 다 거기서 거기겠지만 더쿠로써 자연스럽게 드는 살아볼 수 없는 시절에 대한 그리움은 어쩔 수 없는 일인가 보다.


You met me at a very strange time in my life.


그래서 "나는 물고기와 대화를 하려고 하는 정신나간 인간입니다"라는 것이 이 가사의 내용인 것인지, 아니면 "난 정신나간 인간이여서 물고기와 대화를 시도하기도 하고, 내 머리를 깨먹기도 합니다"하는 것이 주된 내용인지 잘 모르겠지만(사실 어느쪽이여도 정신나간 가사이긴 하다.) 그까짓 노랫말이 뭐가 그리 중요하겠는가. 중요한 것은 이 곡이 가진 분위기와 감정, 느낌이다. 말도 안되는 소릴 지껄이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렇게나 강렬한 임팩트를 가지고 있는 곡이라면, 구태여 단어 하나하나에 대단한 의미를 부여하고 숨은 뜻을 찾아 애쓸 필요가 없지 않을까.



이 노래를 듣는 가장 좋은 타이밍은 내가 미친 것인지, 아니면 이 세상이 미친것인지 잘 구별이 되지 않는 순간이다. 온갖 잡음으로 머리 속이 복잡할 때 이 노래를 들으면 내가 혼란스럽게 여겼던 모든 것들이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으로 느껴지면서 상황에 순응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덧붙이자면 영화 <파이트클럽>의 엔딩 장면에 이 곡을 삽입한 것은 진정한 신의 한 수 였다. 음악과 영화 서로가 서로에게 임팩트를 더해준 아주 좋은 예로, 이보다 그 영화에 적합한 곡은 아마 찾을 수 없을 것이다. Where Is My Mind?를 듣고 있다 보면 무너져내리는 건물들을 바라보고 서 있는 '그'와 말라의 모습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그냥 내가 듣고 싶어서 올리는 노래 모음이 되시겠다. 전에 이와 거의 비슷한 구성으로 네이버 뮤직의 JAMM LIST를 만들었던 적이 있는데, 대체 JAMM LIST를 만들어서 받는 포인트는 뭐에 쓰는 걸까. 그걸로 음원이라도 구입할 수 있는건가 하고 봤더니 그런 것도 아닌 것 같고. (사용처를 아시는 분들의 제보를 받습니다.)


우리나라 노래를 즐겨 듣지 않은지 수년이 되어서 요즘 인기있는 K-POP은 없지만, 그래도 나름 POP, ROCK, ALTERNATIVE, ELECTRONIC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이 반영된 밸런스형 플레이 리스트라고 자부한다. 온갖 장르의 찰랑찰랑한 곡들을 듣고 싶을 때 딱 맞는 플레이 리스트라고나 할까.


그나저나 여름 언제 끝나냐.







날씨가 따뜻해 지고 슬슬 봄 바람이 불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찾게 되는 음악들이 있다. 아마 이 분야에서 가장 크게 명성을 떨치고 있는 것은 버스커버스커의 벚꽃엔딩일 것이다. 벚꽃엔딩의 어마어마한 성공과 함께 매년마다 음악 차트에는 새로운 봄 캐롤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그에 필적할만한 성과를 보여준 곡은 없었던 것 같다. 여기까지는 국내의 사정으로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는 식상한 이야기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가사에 사쿠라가 들어간다던지, 어딘지 모르게 봄 분위기를 풍기는 곡들을 추려서 뻔하다고 말하면서도 봄이되면 어김없이 찾아 듣게되는 일본의 봄 캐롤에 대한 포스트를 작성해 보기로 했다. 하기의 리스트는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감상에 의해 작성된 것으로 다수의 의견과 맞지 않을 수 있으니 참고해 주기를 바란다.





1. 春よ、来い(봄이여, 오라) - 松任谷由実(마츠토야 유미) 



春よ 遠き春よ 瞼閉じればそこに

봄이여 아득한 봄이여, 눈을 감으면 바로 그 곳에




2. アロエの花(알로에의 꽃) − 大比良瑞希(오오히라 미즈키)



片耳ずつ聞いたメロディ 久しぶりに口ずさめば

한 쪽 씩 나눠 들었던 멜로디를 오랜만에 흥얼거려 보면

悩みは消えて行きそう

고민들은 모두 사라져 버릴 것만 같아




3. キラキラ(반짝반짝) -  aiko



風になってでも あなたを待ってる
바람이 되서라도 널 기다리고 있을거야
そうやって 悲しい日を超えて來た

그렇게 슬픈 날들을 이겨내 왔어



4. SAKURA - いきものがかり(이키모노가카리)



さくら ひらひら 舞い降りて落ちて
벚꽃은 하늘하늘 춤추며 떨어지고
春のその向こうへと歩き出す
봄의 저 편을 향해 걷기 시작해




5. 春の歌(봄의 노래) - スピッツ(스핏츠)



歩いていくよ サルのままで孤り
걸어가자 마음가는대로 혼자서



6. 桜木町(사쿠라기쵸) - ゆず(유즈)



初めて君と口付けた櫻木町で最後の手を振るよ
처음으로 너와 입맞췄던 사쿠라기쵸에서 마지막으로 손을 흔들어




7. 桜色舞うころ(연분홍 빛 춤출 무렵) - 中島美嘉(나카시마 미카)



やがて季節はふたりを  どこへ運んでゆくの

이윽고 이 계절은 우리 두 사람을 어디로 데려가는 걸까




8. 桜Color(벚꽃 Color) - GReeeeN



咲くのならばこの街で そう決めて 見上げた 桜

피어날 거라면 이 거리에서, 그렇게 마음먹고 올려다 본 벚꽃




9. 桜の花びらたち(벚꽃잎들) - AKB48




桜の花びらたちが咲く 頃
벚꽃 잎들이 피어날 때

目の前の大人の階段 一緒に登って手を振ろう
눈앞의 어른으로의 계단을 함께 올라가 손을 흔들자




10. 明日、春が来たら(내일 봄이 온다면) - 松たか子(마츠 타카코)


明日、春が来たら君に逢いに行こう 
내일 봄이 온다면 너를 만나러 갈거야 




어김없이 주말이 가고 있다. 이번 주말은 조금 활동적으로 보내보고자 지난 주중에 생각해 보았지만, 생각은 역시 생각에 그쳤고 나는 또 생기 없는 표정으로 랩탑을 열고 멍하니 앉아 있는 중이다. 어디 보자, 이제 월요일이 몇 시간이나 남았으려나- 앞으로 약 3시간 정도 후면 날짜 상으로는 월요일 되고, 거기서 6시간 정도가 더 지나면 나는 출근 준비를 하고 있겠지. 매주 똑같이 반복되는 일인데 어쩌면 이렇게 매번 치가 떨리게 싫을 수 있는 것인지 의문스러울 따름이다.


그렇지만 앞으로 9시간 후의 일로 벌써부터 주말의 기분을 망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제일 좋아하는 컵에 커피를 따르고, 이 꿀꿀한 기분을 바꿔줄만한 음악을 골라 보기로 마음먹었다. 





주말 오후에는 느긋하게 앉아 맥주나 커피를 마시면서 일렉트로닉 음악을 듣는 것이 최고다. 라는 생각으로 플레이리스트를 몇차례 뒤지다가 Sam Sure의 <Hunger>를 첫 곡으로 골랐다. 부드러운 일렉트로닉 비트 위에 덧입혀진 중독성있는 멜로디와 Sam Sure의 느린 목소리를 멍하니 듣고 있다 보면 내일 아침의 출근길, 해야할 일들 따위로 복잡하던 머리 속이 차분하게 가라 앉는 기분이 든다.


이 곡을 듣다보니 언제든 이런 뮤지션의 공연을 즐길 수 있는 런던 사람들이 부러워지기 시작했다. 내가 런던에 거주중이라면 정말 다양한 덕질의 끝판을 보여줄 수 있을 텐데 하고 잠시 상상에 빠져 본다. 




Sam Sure는 영국의 런던에서 주로 활동하고 있는 싱어송라이터로 일렉트로닉, 힙합, R&B를 기반으로 다양한 음악 활동을 펼치고 있다. 2014년 사운드클라우드에 본인의 자작곡을 게시하면서 인기를 얻기 시작했고 Year&Years와 함께 투어를 돌기도 했으며, 2018년에는 <What About It?>이라는 싱글을 릴리즈했다. 너무 좋아하는 뮤지션이라 자세히 소개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나도 아는 정보가 이것 뿐이다. 여전히 Black Butter Records랑 계약이 되어있는지 조차 모르겠는데다 위키피디아 페이지조차 없는 것이 현실이라니.


본의 아니게 자세한 설명을 생략하는 대신 음악을 하나 더 올려 둬야 겠다. <Hunger>가 마음에 들었다면 아래의 <Cracks>도 반드시 들어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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