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헤미안 랩소디 (Bohemian Rhapsody, 2018)


<2018.11.4.>

나에게는 좀처럼 찾아 오지 않던, 시사회 당첨의 기회가 찾아와서 개봉하기도 전에 남들보다 먼저 <보헤미안 랩소디>를 Screen X 상영관에서 보게 되었다. 기대감이 너무 컸던 탓인지 만족도는 그리 높지 않았다. 사실 아무리 잘 봐주려고 해도 잘 만들었다고 말할 수 없는 영화이긴 하다. 굵직한 서사가 등장했다가 흐지부지하게 사라져버리길 수 없이 반복하기 때문에 전체적인 스토리가 개연성 있고 매끄럽게 진행되지 못하는데다, 연출로 매울 수 없는 그 스토리의 구멍을 퀸의 음악으로 간신히 메우고 있는 수준이니 말은 다 했다. 갈등이 발생했다가 갑자기 맥락없이 퀸의 노래가 나오면서 흐지부지 해결되고 갑자기 또 다른 갈등이 발생하는 것을 한 시간 이상 지켜보다가 보니 지루하기까지 했다. (중간 중간 유머를 넣은 장면들에서 웃기는 했지만 그게 영화의 전체적인 흐름까지 살려 줄 수는 없었다.)


바로 그 때, 영화 초반에 머큐리 혼자 무대에 오르는 것 처럼 보였던 장면이 사실은 그의 가족과 다름없는 밴드 멤버들과 함께 역사를 만들었던 순간이라는 것을 보여주면서 전설적인 라이브 에이드 공연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재현된 20여분 간의 라이브 에이드 공연으로 인해 나는 이 영화에 대한 어떤 평가도 내릴 수 없는 지경에 다다르고 말았다. 너무나 충실하게 퀸을 재현해낸 배우들과, Screen X 상영으로 인해 온 시야를 가득 메우는 열정정인 관객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을 가능하게 한 퀸의 음악은 나에게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전율을 불러 일으켰고 마치 내가 그 장소에 살아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했다. (Sing Along 상영관이었다면 진짜 박수 치면서 노래 다 따라 불렀을 것...)


마지막의 저 극적인 20분이 없었더라면 "어떻게 이런 주제를 가지고 이정도 레벨의 영화를 만들어 낼수가 있지? 논할 가치도 없네." 정도로 이 영화를 평가 했겠지만, 20분 간 강렬한 경험을 하고 나온 나는 뭔가에 씌인 듯이 앞서 느꼈던 지루함을 비롯한 온갖 부정적인 감정을 싹 잊어버렸고, 세상에서 제일 멋진 경험을 하고 나온 듯한 기분에 잔뜩 들뜨고 말았다. 


영화를 보고 난 뒤 1주일이 지난 지금 생각해보니 그냥 라이브 에이드 실황을 대형 스크린으로 상영하는 것이 영화를 저렇게 만들어내는 것 보다는 훨씬 나았겠다 싶기도 하다. 그렇지만 어쨌든 그 날의 감정은 진짜였고, 그 때문에 나는 <보헤미안 랩소디>를 객관적으로 평가를 내릴 수 없는 영화로 선정하는 바이다.


덧. 스토리와 연출은 별로였지만, 배우들은 너무나 훌륭했다. 특히 어떻게 저렇게 비슷한 이미지의 배우들을 찰떡같이 캐스팅 했나 싶어서 영화를 보는 내내 감탄할 정도였다. 특히 브라이언 메이와 존 디콘은 거의 본인이 타임머신을 타고 미래로 온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정도로 비슷했다. 로저 테일러 역의 벤 하디는 외모가 비슷한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잘생겼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벤 하디는 왠지 장발이 더 잘 어울리는 것 같다.


레토 (Summer, 2018)


진정한 의미의 새해 첫 영화. (1월 1일에 보헤미안 랩소디를 보긴 했지만 그 전에 이미 두 번이나 본 영화니까 논외이다.) 영화를 고르는데 까다로운 편은 아니지만 레토의 경우 영화의 소재와 정치적인 상황, 그리고 평단의 평가까지 놀랍도록 내 취향에 맞아 떨어져서 꼭 극장에서 관람하고 싶었던 작품이다.


레토는 스토리텔링에 충실한 전기영화라고 하기 보다는  찬란하게 빛나는 어느 여름 날의 한 순간을 그대로 담아낸 사진과 같다. 빅토르 최라는 인물의 실화를 다루고 있긴 하지만 그의 개인적인 서사나 밴드 키노의 활동, 그리고 비극적인 죽음은 깨끗하게 들어 냈다. 그 대신 영화가 조명한 것은 1981년의 여름, 억압된 사회 체제 속에서도 영혼 만큼은 억압당하지 않았던 인디 뮤지션들과 그들의 열정, 그리고 그들을 스쳐 지나갔던  강렬한 감정이다. 


영화는 빅토르, 마이크, 나타샤 세 사람의 사랑과 우정, 관계를 조명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마이크에 감정을 이입하며 영화를 감상했는데, 아무래도 레토 내에서 감정을 가장 알기 쉽고 또 많이 드러내는 인물이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우선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온전히 소유하지 못했지만 그것을 감수하는 모습으로 그려졌기 때문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고, 그럼에도 빅토르의 음악적인 재능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하는 것이 굉장히 멋있었다. 거기다 실제로 마이크가 그런 생각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영화에서는 검열이 엄격한 소련에서 받아들여지는 가사를 쓰고 그것을 바탕으로 안정적인 활동을 하는 본인 스스로에 대한 열등감이랄까 자괴감 같은 것이 느껴져서 거기에 더욱 감정이 이입되기도 했다. (마이크의 가사는 서정적이고 아름답지만 시대를 대변하는 느낌은 아닌 반면, 빅토르의 가사에는 사회주의 국가의 어두운 면이 그대로 담겨있는 것으로 그려진다.)


영화가 담아내는 시기가 굉장히 한정적이여서 그 이후 그들의 관계가 어떻게 발전했으며 음악 활동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유추할 수는 없었지만, 정말로 그들의 1981년을 살짝 엿본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스토리에 반드시 마침표를 찍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 싶어서 있는 그 대로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레토의 또 다른 감상 포인트는 바로 그 시절 인기있었던 훌륭한 뮤지션들의 커버 곡을 들어볼 수 있다는 점이다. 위에 영상을 첨부한 Iggy Pop의 Passenger부터 시작해서 Talking Heads의 Psycho Killer, Lou Reed의 Perfect Day 등 수 많은 명곡들이 재해석되어 삽입되는데 영상과 음악 모두 훌륭하기 때문에 좋은 볼거리 이다. 뮤지컬 느낌도 나고 코믹한 요소들이 많이 들어가서 재미있기도 하다. 


중간 중간 클래식 락 앨범들의 커버를 재해석한 장면들도 나오는데 더쿠들이라면 소소한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Rolling Stones의 Sticky Fingers, The Beatles의 Abbey Road, With The Beatles, Pink Floyd의 Wish You Were Here, The Velvet Underground, The Who의  Who's Next 는 확실히 생각난다. 이거 확인하러 한 번 더 보러 갈 기세.


관객과의 소통을 담당하는 회의론자(Skeptic)


그리고 한 편의 짧은 뮤직비디오가 끝날 때 마다 실제 상황이 아니라고 알려주는 회의론자(Skeptic)의 역할도 꽤 흥미롭다. 영화를 보고 있는 이 시대의 우리가 할 법한  생각을 등장인물들에게 말하기도 하고, 상황을 정리하고 상상과 현실을 구분해주기도 하는데 덕분에 색다른 영화 감상을 할 수 있었다.


나에게 있어서 레토는 기타를 치며 서로의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다가 거침없이 옷을 벗고 바다를 향해 뛰어들 수 있는, 젊음이 가득한 1981년 여름의 해변이다. 내가 잘 알지 못하는 검열로 가득한 억압된 시대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이따금씩 앨범을 꺼내 들춰 보듯이 레토를 떠올리며 그 여름을 함께 추억할 수 있을 것 같다. 오랜만에 애상적 아름다움이 넘실거리는 영화를 본 것 같아서 기분이 매우 좋다.


펀치 드렁크 러브 (Punch-Drunk Love, 2002)


나의 영화 취향은 장르를 가리지 않는 편이지만, 로맨스를 꺼리는 경향이 있다. 남녀 간의 절절한 사랑이 나에게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나에게도 로맨스의 명작으로 꼽을만한 영화가 몇 편 있는데 바로 스파이크 존즈의 그녀와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비포 시리즈이다. 로맨스에 현실감을 한 스푼, 그리고 씁쓸함을 두 스푼 추가한 영화가 취향이라고 할까.


그렇게 쓸쓸한 로맨스를 사랑하던 나에게 펀치 드렁크 러브가 찾아왔다. 어쩌면 내가 사랑한 첫 번째 달달한 로맨스 영화라고 볼 수도 있겠다. 물론 마냥 달달하기만 한 건 아니다.



배리 이건은 불안정한 내면을 가진 사람이다. 언틋 멀쩡한 사업장을 운영하고 있는 사업가로 보이지만, 일곱명의 누나, 여동생에게 치여가며 살아서인지 아니면 선천적인 문제인지 언행이 여간 부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다. 거기다 소심하기까지 해서 여자 형제들의 등쌀에 이리 저리 치이면서도 단호하게 거부하지 못하고, 그러다 폭발하면 갑자기 창문을 깬다던지, 주위의 기물을 파손하는 등의 폭력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치과의사인 매형에게 가끔 이유 없이 울고싶다는 이야기를 하며 갑자기 울음을 터트릴 때는 우울증인가 싶기도 하다. 이러한 배리의 불안한 정신 상태는 영화를 괴팍스럽고 혼란스럽게 만든다.



하지만 배리에게 아주 특별한 사랑이 찾아 오면서 영화의 분위기는 점차 사랑스럽게 변화한다. 그에게 사랑은 한 번도 시도해보지 못하고 꿈꿔보지 못한 일들을 결행하게 만드는 마법과도 같은 일이다. 여행을 다녀 본 적이 없지만 그녀를 만나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그녀를 지키기 위해 악당을 물리치는 슈퍼 히어로가 되기도 한다. 물론 말도 안되는 이야기이다. 양아치들에게 벌벌 떨던 그가 그들의 보스를 찾아가서 당당하게 사랑 때문에 나는 네가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강해졌다고 외치는 부분은 우스꽝스럽기 까지 하다. 그렇지만, 정말로 머리를 세게 얻어 맞아서 펀치 드렁크 증후군에 걸리기라도 한 듯 이 모든 말도 안되는 상황이 말이 되게 느껴지는 것이 이 영화의 마력이다. 


"I have a love in my life. It makes me stronger than anything you can imagine."


오프닝 시퀀스부터 감각적이다.


그저 그런 사랑 이야기를 가지고 보는 사람을 이토록 얼떨떨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은 눈 앞에서 수천개의 불빛이 점멸하는 것 같은 감각적인 연출로 정신이 불안정한 남자와 그가 사랑에 빠지는 순간을 그려낸 PTA의 천재적인 연출과 인물들의 내면을 그대로 들여다 보는 듯한 사운드트랙 덕분인 것 같다. 나는 그 중에서도 영화의 사운드트랙에 완전히 매료되었는데 신경을 긁어내리는 듯한 배리의 테마곡이 등장하면  나 또한 그와 같은 스트레스를 겪었고, 그녀가 등장하고 he needs me가 흘러 나올 때면 나 역시 그와 그녀를 향한 참을 수 없는 사랑스러움을 느꼈다.


가끔 인터넷에서 너무 귀여워서 건물을 부수고 싶다는 글을 보면 저게 무슨 소리인가 싶었는데, 펀치 드렁크 러브가 바로 그렇다. 벽을 마구 때리고 창문을 부수고 싶게 만드는 사랑스러움을 지닌 영화이다. 이런 로맨스라면 24/7 언제든지 볼 수 있을 듯.


그것 (It, 2017)

직접 보기도 전부터 그것은 나에게 꽤 핫한 영화였다. 오래 전 TV 영화로 방영되었던 그것(1990년 작)을 매우 인상깊게 본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북미에서의 예상을 뛰어 넘는 스코어 역시 나의 기대감에 양념을 조금 더 치긴 했다.) 구작을 가만히 떠올려 보면 그리 퀄리티가 좋은 영화는 아니었지만, 팀 커리가 연기한 페니와이즈 만큼은 내 기억 속에 강렬한 족적을 남겼다. 그의 페니와이즈 덕분에 전에 없던 삐에로 공포증이 생겼을 정도이니 말이다. 어쨌든 이러한 추억 때문에 새롭게 리메이크된 그것에 대한 나의 기대감은 점점 더 커져만 갔고, 개봉을 기다리며 기대치가 극에 달했을 무렵 한 리뷰를 접했다. "이 영화는 호러 영화가 아니라 성장 영화이다." 스포일러 당할까봐 내용은 자세히 읽어보지 못하고, '이게 무슨 말이지?'하는 의문을 가지고 극장을 찾았던 기억이 난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영화는 성장 영화가 맞았다. 공포감을 불러 일으키는 장면들 역시 존재하기는 했지만 그 보다는 루저 클럽 아이들이 자신의 공포심을 극복해내고 한 걸음 더 성장하는 데에 포커스가 맞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조금 더 세밀하게 따져 보자면 성장 영화에 약간의 호러 시즈닝을 첨가한 정도랄까. 그래서인지 각 등장인물들에게 보다 명확한 캐릭터성과 서사가 부여되어서 구작에 비해 루저 클럽 멤버들에게 감정을 이입하고, 공감하는 것이 더욱 쉬웠다. 이 점은 개인적으로 매우 좋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이다. 성장에 포커스를 맞추고 감상한다면 꽤 훌륭한 영화이기까지 하다. 몇몇 장면들은 약간 감동적이기도 하고 말이다.


그러나 호러의 측면에서는 아쉬운 부분들이 꽤 있다. 그 중에서도 내가 가장 아쉽게 생각하는 부분은 페니와이즈이다. 그는 사람들이 그를 두려워할 수록 더욱 강해지는 괴물인데, 그런 것 치고는 영화에서 우스운 꼴로 등장할 때가 너무 많았다. 그 중에서도 베벌리를 납치해간 뒤 춤을 추면서 등장하는 부분은 지나치게 우스꽝스러워서 탄식을 자아냈을 정도이다. 거기다 마지막에는 아이들에게 물리적으로 집단 구타를 당하는데, 이 부분 역시 루저 클럽 관점에서는 통쾌한 한방이었지만 호러 영화를 기대하는 관객 입장에서는 약간 아쉬운 부분이었다. 아이들이 더 이상 페니와이즈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꼭 구타로 표현했어야 하는 걸까 싶기도 하고.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신작의 페니와이즈가 아주 형편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가 조용히 등장하거나(하수구, 집 지하실 등) 루저 클럽 한 명, 한 명에게 그들이 제일 무서워하는 것으로 나타나서 공략해 나갈 때는 꽤 공포스러웠다.


이제 영화를 본지 너무 오래되어서 자세히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자막에서도 몇가지 수정되었으면 했던 부분이 있었던 것 같은데, 빌이 조지인척하는 페니와이즈를 알아차리는 장면이 그 중 하나이다. 영화 초반부에 빌이 조지에게 종이배를 만들어 주는 장면이 나온다. 그 때 빌은 종이배를 그녀(She)라고 지칭했고, 조지 역시 그것을 재미있어하며 그대로 따라한다. 그런데 조지로 변장한 페니와이즈는 종이배를 가르켜 그것(it)이라고 말한다. 이것을 보고 빌은 조지가 가짜라는 것과 동생이 이미 죽었다는 것을 확신하고 망설임 없이 방아쇄를 당긴다. 자막으로 구현해내기 그리 어려운 부분은 아니었을 것 같아서 아직까지도 아쉬운 점으로 기억되는 장면이다.


세상에서 제일 무섭고 크리피한 삐에로는 팀 커리의 페니와이즈이다.


구작이 호러에 성장을 첨가한 영화였다면, 신작은 성장에 호러를 첨가한 영화이다. 영화에 어떤 것을 기대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평이 달라지기는 하겠지만, 나에게는 꽤 만족스러운 영화였다. 호러 부분이 약간 아쉽긴 하지만 그 대신 루저 클럽의 친구들을 알게 되었고 그들이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 즐거웠다. 거기다 전체적인 완성도 역시 신작이 조금 더 나은 것 같고. 그러나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삐에로가 팀 커리의 페니와이즈인 것은 변함이 없다. 그리고 앞으로도 변함이 없을거라고 확신한다.


미션 임파서블: 폴아웃 (Mission: Impossible – Fallout, 2018)

시리즈의 첫 작품이 나온지도 어느덧 20년이 훌쩍 넘었다. 오랜 시간 여름 극장가를 지킨 미션임파서블을 보며 그 동안은 톰 크루즈가 건강하기만 하다면 끝나지 않고 지속될 시리즈가 아닐까 싶었지만, 미션 임파서블: 폴아웃을 보고 나니 그것이 너무 안일한 생각이었던 것 같다. 


스토리를 문제삼고 싶지는 않다. 영화를 보는 내내 모든 장면들이 예측가능했다는 점에서 조금만 더 클리셰를 벗어난 스토리를 사용해 주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결국 미션임파서블은 전형적인 블록버스터형 팝콘 무비이다. 스토리에 신경쓰는 대신 화려한 볼거리를 채워주면 문제 없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스토리와는 별개로 미션 임파서블: 폴아웃은 팝콘 무비로써의 매력이 전작들에 비해 많이 뒤떨어 진다. 이 정도로 중간에 시간을 많이 확인한 액션 영화는 더 없을 정도로 말이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첫 번째 문제로 지루한 액션 씬을 들고 싶다. 특히 자동차 추격, 헬기 추격 장면은 필요 이상으로 길었고 거기다 긴장감조차 느껴지지 않게 연출되는 바람에 보는 내내 하품이 나올 지경이었다. 거의 비슷한 장면들이 불필요할 만큼 계속해서 반복되어 보여지는데 대체 어떤 긴장감과 쾌감을 느낄수 있겠는가. 이 추격 장면들을 조금씩만 줄이고 완급을 조절했으면 영화의 전체 러닝타임도 줄어들었을 것이고, 액션의 퀄리티 또한 좋아졌을 것이다.


IMF의 기술력을 확인할 수 있는 특별한 장비들이 등장하지 않았다는 점도 아쉽다. 사실 미션임파서블 시리즈가 재밌는 이유의 8할 정도는 이단 헌트의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는 액션이지만, 나머지 2할 정도는 IMF의 기상천외한 최첨단 장비들이다. 20년 동안 함께한 시그니쳐이자 클래식인 고무 마스크도 좋지만, 본적 없는 최첨단의 장비 또한 함께 등장했더라면 잠시나마 관객의 지루함을 달래줄 수 있지 않았을까.


매력적인 캐릭터가 없었다는 것 또한 문제이다. 그나마 전 시리즈에서는 팀의 관계성이나, 이단과 벤지의 티키타카 등 캐릭터의 개성이 드러나는 장면들이 조금씩은 있었는데, 폴아웃에서는 그 점이 많이 부족했던 것 같다. 특히 메인 빌런이 지나치게 심심했는데, 특별히 어떤 능력이 있는지도 모르겠고 행위에 대한 이유 또한 그다지 명확하지 않고 거기다 압도적으로 강한 것도 아니었다. 메인 빌런이 압도적이어서 그를 막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것 처럼 느껴질 때 그것을 해결하는 이단 헌트를 보며 카타르시스를 얻는 것이 이 시리즈의 묘미인데 이번에는 그런 즐거움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원톱 주연의 영화이기 때문에 한 명의 서사에 초점이 맞춰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거기에 양념을 치려면 매력적인 사이드킥과 빌런 또한 필요한 법이다. 


마지막으로,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고스트프로토콜과 로그네이션에 나왔던 브랜트의 역할이 그리웠다. 브랜트 처럼 팀원들이 무모한 계획을 세울 때 이성적인 의견으로 반대하는 캐릭터가 있었다면, 휘몰아치면서 미친듯이 직진만 하는 영화의 분위기가 어느정도 환기될 수 있었을 것 같다.


로그네이션 부터 뭔가 조금씩 힘이 빠진다는 느낌은 들었지만 이번 신작에서는 미션임파서블 시리즈가 가진 장점 보다는 오랜 시간 반복되면서 쌓인 식상함이 더욱 크게 느껴지는 것을 보니 왠지 마음이 아프다. 앞으로 나올 다음 시리즈에서는 새로운 모습으로 부활한 이단 헌트와 IMF를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 (Captain America: Civil War, 2016)

1. 스티브 로저스에게 버키 반즈는 단순한 의미의 친구가 아니라 그보다 더 중요하고 소중한 존재이다. 그는 스티브가 보잘것 없었던 시절부터 그의 내면을 이해하고 그것을 존중해 줬던 거의 유일한사람이기 때문이다. 전작인 <캡틴아메리카: 윈터솔져>에서 스티브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Even when I had nothing, I had Bucky."


2. 버키 반즈는 모든 문제의 중심에 있지만, 그 중에서 그가 선택했던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가 본인의 의지로 무언가를 선택한 것은 하울링코만도를 결성하여 전장에 나서는 캡틴을 따라 나섰던 것, 그리고 와칸다에서 스스로 얼려질 것을 결심하는 순간 뿐이다. 게다가 윈터솔저로써의 그는 법법자이자 가해자 이지만, 그의 인생 전반을 놓고 보면 전쟁의 피해자이기도 하다. 평범한 브루클린의 청년이었던 그는 끊임없는 고문과 세뇌를 통해 기억을 잃고 완벽한 살인 병기가 되었고, 인생 대부분의 시간을 얼려진 채로 보냈다. 그리고 하이드라의 필요에 의해 짧은 기간동안 해동되어 임무를 수행하고 곧바로 다시 얼려지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작중에서는 그가 하이드라의 도구로써 죽였던 수많은 사람들에 대한 기억으로 괴로워하고 있다. 친한 친구를 따라 전장에 나섰던 그 한 번의 선택이 그의 인생을 나락으로 떨어트린 것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3. MCU 세계관에서 정부나 국제기구는 대부분 멍청하고, 책임감도 없다. 어벤져스 1 사태 때 그들은 더 큰 피해를 막겠다는 명분으로 수많은 무고한 뉴욕 시민들을 거의 죽일 뻔 했지만, 그에 대한 책임은 다른 이들에게 떠넘겼다. 시빌워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모든 일련의 사건의 배후는 하이드라이지만, 그것을 밝히기에는 본인들의 무능함이 만천하에 드러나는 셈이니 적당히 버키 반즈를 내세워 책임을 전가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토니 스타크가 버키 반즈의 무고함을 증명하자, 로스 장관이 오히려 그를 위협하는 장면을 보면 막연한 느낌은 확신으로 변한다. 게다가 스티브 로저스는 퍼스트어벤져, 윈터솔져 등의 사건들을 경험하면서 개인을 통제하는 상위 기관으로 인한 폐해를 수도 없이 목격해 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의 버키를 어디에 마음 놓고 맡길 수 있을까.


4. 연출이 스티브 로저스나 버키 반즈의 감정선이나 서사에 굉장히 불친절하다고 느껴졌다. 배우들의 인터뷰를 보면 스티브와 버키의 관계성이나 그들이 가진 고뇌와 죄책감 등이 명확한데 비해 실제 영화에서는 그것들이 눈에 띄게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 문제이다. 그에 반해 토니 스타크의 부모님에 대한 트라우마는 영화 초반부 부터 매우 일관성있게 그려진다. 스타크 부부의 암살 장면 또한 여러번에 걸쳐서 등장하고 말이다. 캡틴 아메리카 시리즈에 대한 이해 및 각 캐릭터의 서사에 대한 사전 지식 없이 시빌워를 본다면 캡틴아메리카와 버키반즈는 무조건적인 가해자, 토니 스타크는 피해자로 보일 수 있을 것이다.


5. 내가 아이언맨 시리즈 중 3편을 가장 좋아하는 이유는 3편에 이르러서야 토니 스타크가 모든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이거야 말로 트릴로지가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완벽한 엔딩이라는 생각까지 했을 정도이다. 그런데 그 이후에 나온 어벤져스 2 부터 지금의 시빌워에서의 토니는 극복했던 트라우마가 다시 재발이라도 한건지 시종일관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그의 정서적 불안은 MCU 영화의 주요한 갈등의 원인으로 끊임없이 재사용되고 있다. 아무리 감독이 다르다고 해도 같은 세계관 내에서 시간 순서대로 스토리가 진행되고 있는 것은 사실인데 이래도 되는 건가 싶기까지 하다. 아이언맨 3 엔딩에서 토니가 "I am iron man." 이라고 말하는 순간 내가 받았던 감동을 생각하면 이건 거의 배신에 가까운 행위이다. 이미 성장이 끝난 완성형 캐릭터를 자사의 다른 영화를 위해 마구잡이로 소비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6. 수 많은 캐릭터가 등장함에도 자연스럽게 각각의 개성과 포인트를 잘 살려주었다는 점에서 굉장히 만족스러웠다. 이미 시리즈가 개봉해서 큰 인기를 얻었던 앤트맨이나, 가장 사랑받는 히어로 중 한명인 스파이더맨은 물론이고 다른 히어로들에 비해 초면에 가까운 블랙팬서까지 고르게, 매력을 보여준 것은 굉장한 일이다. 당장 옆 동네의 DC만 보더라도 루소 형제가 이 일을 얼마나 잘 해냈는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