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치 드렁크 러브 (Punch-Drunk Love, 2002)


나의 영화 취향은 장르를 가리지 않는 편이지만, 로맨스를 꺼리는 경향이 있다. 남녀 간의 절절한 사랑이 나에게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나에게도 로맨스의 명작으로 꼽을만한 영화가 몇 편 있는데 바로 스파이크 존즈의 그녀와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비포 시리즈이다. 로맨스에 현실감을 한 스푼, 그리고 씁쓸함을 두 스푼 추가한 영화가 취향이라고 할까.


그렇게 쓸쓸한 로맨스를 사랑하던 나에게 펀치 드렁크 러브가 찾아왔다. 어쩌면 내가 사랑한 첫 번째 달달한 로맨스 영화라고 볼 수도 있겠다. 물론 마냥 달달하기만 한 건 아니다.



배리 이건은 불안정한 내면을 가진 사람이다. 언틋 멀쩡한 사업장을 운영하고 있는 사업가로 보이지만, 일곱명의 누나, 여동생에게 치여가며 살아서인지 아니면 선천적인 문제인지 언행이 여간 부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다. 거기다 소심하기까지 해서 여자 형제들의 등쌀에 이리 저리 치이면서도 단호하게 거부하지 못하고, 그러다 폭발하면 갑자기 창문을 깬다던지, 주위의 기물을 파손하는 등의 폭력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치과의사인 매형에게 가끔 이유 없이 울고싶다는 이야기를 하며 갑자기 울음을 터트릴 때는 우울증인가 싶기도 하다. 이러한 배리의 불안한 정신 상태는 영화를 괴팍스럽고 혼란스럽게 만든다.



하지만 배리에게 아주 특별한 사랑이 찾아 오면서 영화의 분위기는 점차 사랑스럽게 변화한다. 그에게 사랑은 한 번도 시도해보지 못하고 꿈꿔보지 못한 일들을 결행하게 만드는 마법과도 같은 일이다. 여행을 다녀 본 적이 없지만 그녀를 만나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그녀를 지키기 위해 악당을 물리치는 슈퍼 히어로가 되기도 한다. 물론 말도 안되는 이야기이다. 양아치들에게 벌벌 떨던 그가 그들의 보스를 찾아가서 당당하게 사랑 때문에 나는 네가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강해졌다고 외치는 부분은 우스꽝스럽기 까지 하다. 그렇지만, 정말로 머리를 세게 얻어 맞아서 펀치 드렁크 증후군에 걸리기라도 한 듯 이 모든 말도 안되는 상황이 말이 되게 느껴지는 것이 이 영화의 마력이다. 


"I have a love in my life. It makes me stronger than anything you can imagine."


오프닝 시퀀스부터 감각적이다.


그저 그런 사랑 이야기를 가지고 보는 사람을 이토록 얼떨떨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은 눈 앞에서 수천개의 불빛이 점멸하는 것 같은 감각적인 연출로 정신이 불안정한 남자와 그가 사랑에 빠지는 순간을 그려낸 PTA의 천재적인 연출과 인물들의 내면을 그대로 들여다 보는 듯한 사운드트랙 덕분인 것 같다. 나는 그 중에서도 영화의 사운드트랙에 완전히 매료되었는데 신경을 긁어내리는 듯한 배리의 테마곡이 등장하면  나 또한 그와 같은 스트레스를 겪었고, 그녀가 등장하고 he needs me가 흘러 나올 때면 나 역시 그와 그녀를 향한 참을 수 없는 사랑스러움을 느꼈다.


가끔 인터넷에서 너무 귀여워서 건물을 부수고 싶다는 글을 보면 저게 무슨 소리인가 싶었는데, 펀치 드렁크 러브가 바로 그렇다. 벽을 마구 때리고 창문을 부수고 싶게 만드는 사랑스러움을 지닌 영화이다. 이런 로맨스라면 24/7 언제든지 볼 수 있을 듯.



메리 포핀스 리턴즈 (Mary Poppins Returns, 2018)


제작 소식을 들었던 순간부터 손꼽아 기다렸던 메리 포핀스 리턴즈를 개봉일에 보고 왔다. 다시 만난 메리 포핀스와 마이클, 제인은 반가웠지만 생각보다 아쉬운 점이 많아서 마음이 복잡하다. 그렇지만 전혀 매력이 없는 영화는 아니었기에 기억이 모두 사라지기 전에 이 영화를 보면서 느꼈던 좋았던 점과 아쉬웠던 점을 기록해 보려고 한다.



  • 좋았던 점

1. 무엇보다 가장 좋았던 점은 주연을 맡은 에밀리 블런트를 비롯한 배우들의 연기였다. 다른 얼굴의 메리 포핀스를 보는 것이 낯설까봐 우려했는데 에밀리 블런트의 매력으로 모든 걱정이 잘 매워졌다. 사랑스럽지만 엄격했던 전작의 메리 포핀스를 재현해 내면서도 본인만의 색을 더해서 또 다른 메리 포핀스를 멋지게 창조해 냈다. 줄리 앤드류스의 맑은 음색과는 조금 다르지만 에밀리 블런트의 차분하고 따뜻한 목소리로 부르는 노래를 듣 것 역시 좋았다.

그 밖에도 이제는 성인이 된 마이클과 제인, 점등원 잭, 애나벨, 잭, 조지, 이제는 더 나이들어 보이는 붐 제독과 미스터 구딩은 물론이고 잠깐씩 등장하는 공원 관리인 조차 영화와 너무나도 잘 어울렸다. 그래서인지 정말로 체리 트리 레인이 존재해서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을 훔쳐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였다.


2. 추운 겨울이 지나고 따뜻한 봄을 맞이하는 과정 또한 정말 아름다웠다. 특히 엔딩 부의 봄이 찾아온 체리 트리 레인의 아름다운 하늘과 흩날리는 벚꽃 잎들, 하늘을 나는 색색의 풍선들은 마치 동화를 보는 것 처럼 사랑스러웠다. 발달한 기술 덕분인지 확실히 영상미는 훨씬 좋아 진 것 같다.


3. 전작에 등장한 캐릭터와 사건들을 영리하게 이용했다. 메리 포핀스가 잭에게 버트의 안부를 묻는다던지 어린 마이클과 제인을 처음 만났을 때의 대사를 인용한 것이 반가웠고, 특히 메리 포핀스와 아이들을 통해 구원 받은 미스터 뱅크스가 가족과 함께 날렸던 연이 신작에서도 가족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주요한 소품으로 사용된 것이 너무 좋았다.



모든 근심과 걱정으로 부터 해방된 마이클이 마치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즐거워하며 부르는 노래 Nowhere to go but up 에 전작에서 미스터 뱅크스를 구원하는 넘버로 사용된 Let's go fly a kite 의 멜로디를 샘플링한 것 또한 굉장히 의미있었다. 메리 포핀스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 거슬리지 않으면서도 기존의 팬들에게는 향수를 불러일으킬 수 있을 정도로 밸런스를 유지하며 전작의 요소를 영리하게 배치한 것에 칭찬을 아끼지 않고 싶다.

  * 딕 반다이크의 재등장도 반가웠다! 전작에서 도스 시니어를 연기했을 때는 노인 분장을 했는데 이번에 도스 주니어 역할을 하면서 진짜 노인이 되어서 등장한 것도 재미있다.



  • 아쉬웠던 점

1. 리메이크가 아니라 속편임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너무 충실하게 전작을 재현했다. 오프닝 시퀀스는 물론이고 영화의 전체적인 플롯이 전작과 너무나도 흡사해서 지루할 정도였다.


약간 문제가 있어 보이는 가족에게 어느 날 마법처럼 나타난 메리 포핀스가 아이들에게 마법을 보여주고, 그림 속의 세상으로 데려가기도 하고, 그녀의 범상치 않은 친척(전작에서는 삼촌, 신작에서는 사촌)을 소개하는 등 특별한 가르침을 선사한다. 이 과정에서 아이들은 물론이고 어른들까지 메리 포핀스로부터 다르게 생각하는 것을 배우고, 결국 이를 통해 서로 화합하여 가족의 위기를 극복해 낸다. 그리고 메리 포핀스는 역할을 마쳤다는 듯 가족을 찾아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마법처럼 사라진다. 전체적인 뼈대는 모두 동일하고 거기서 몇가지 요소만 바뀐 수준이다. 리메이크면 몰라도 적어도 속편이라면 이렇게 구태의연하게 만들면 안되는게 아닌가 싶다.


2. 스토리에 개연성이 너무 부족한데다 안일하기까지 하다. 특히 메리 포핀스가 빅벤으로 향하는 순간이 그 절정이었는데, 빅벤만 보고도 이후의 스토리가 쭉 떠오를 정도였다. 이야 문제를 해결한다고 시계탑으로 가네. 시계 바늘을 돌려서 시간을 늦추겠구나. 그럼 붐 제독이 대포를 발사하는 시간도 정확해 지겠군. 하고 자연스럽게 그 다음 다음의 스토리까지 예측할 수 있을 정도이다.

거기다 잭의 팔이 빅벤의 분침에 닿지 않는 것을 보고 메리 포핀스가 어이 없다는 듯이 코웃음을 치고 당연하다는 듯 날아가서 본인이 직접 처리하는 건 대체 무슨 연출인지. 그럴거면 진작 본인이 가서 돌렸으면 될 일이 아닌가. 반짝이들(점등원)의 사다리 묘기와 높은 곳에서의 아슬아슬한 스릴도 보여주고 싶고, 메리 포핀스의 특별한 능력도 보여주고 싶은데 어쩌지? 하다가 아무 생각 없이 그 모두를 섞어버린 느낌이었다.


3. 무엇보다 가장 실망스러웠던 부분은 바로 전작에 비해 기억에 남는 넘버가 없다는 점이다. 아이팟에 메리 포핀스의 사운드트랙 앨범을 통채로 넣어 놓고 들을 만큼 좋아했던 터라 신작의 뮤지컬 넘버도 기대했는데, 어떻게 54년 전 영화보다 못할 수가 있는 건지 모르겠다. 이건 물론 개인의 취향 차이가 있을 수 있는 부분이지만 어쨌든 나는 크게 실망했다. 그나마 Can you imagine that?, Nowhere to go but up 정도가 귀에 잘 들어오고 입에도 잘 붙는 정도였고 나머지는 글을 쓰는 지금 아무 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A spoonful of sugar, Supercalifragilisticexpialidocious, Chim chim cher-ree, Jolly holiday, Let's go fly a kite 등을 비롯해 오랫 동안 사랑받는 인상적인 넘버가 많았던 전작에 비하면 초라한 수준이다.



  • 글을 마치며

기대가 컷던 만큼 아쉬움도 컷던 영화이지만 왠지 한 번 정도 더 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건 어둡고 추웠던 런던에 따뜻한 봄이 찾아오고, 풍선과 함께 날아 오르는 사람들의 행복한 표정과 웃음소리가 봄 하늘을 가득 수놓은 마지막 장면이 나의 마음까지 행복하게 만들어 주었기 때문인 것 같다.

곰돌이 푸 부터 시작해서 최근 디즈니 실사 영화의 트렌드는 어른용 힐링 동화인 것 같은데, 뻔하다고 욕 하면서도 볼때마다 그 속에서 작은 행복과 위안을 얻는 것을 보면 디즈니가 일을 제대로 하고 있기는 한가 보다 싶다.


Goodbye, Mary Poppins.


조금 이상하긴 하지만 가끔씩 이런 생각이 들곤 한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사실은 모두 현실이 아니고, 실제로 나는 지금 어딘가에서 죽어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황당한 상상. 죽기 전에 그 동안의 살아왔던 일들이 주마등 처럼 스쳐 지나간다고 말하는 것 처럼, 죽어가는 와중에 나의 전 인생을 다시 돌아보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이다. 황당하지만 왠지 아주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 같다. 만약에 그렇다면 내가 매일 맞이하는 이 일상은 이미 지나온 과거의 반복에 불과하다는 소리인데, 그렇다면 내가 새로운 선택을 하는 것도 이미 다 예정된 일이 된다는 건가. 말 같지 않은 소리를 정성들여 쓰고 있자니 참 웃긴 노릇이다.



 여의도백화점에는 이와타라고 하는 일본 라멘 집이 있다. 그런데 최근 이 곳의 쇼유 라멘에 푹 빠졌다. 개인적으로는 진한 육수의 파이탄 쇼유 보다는 일반 쇼유를 더 좋아하는데, 닭 육수를 사용해서 일반적인 톤코츠 라멘 보다 깔끔한 맛이 아주 좋다. 웃기게도 나는 일본에서 먹는 라멘 보다 한국에서 먹는 라멘을 더 좋아하는데, 일본에서 먹었던 라멘은 모두 소금을 삼키는 것 처럼 짜게 느껴 졌기 때문이다. 내가 잘못된 맛집을 찾아갔던 것일까. 나는 대부분의 일본 음식들과 문화를 좋아하는 편이지만, 사실 그들의 음식은 초밥 빼고는 다 짠 거 같다. 그래서 인지 한국에서 간을 한 일본 음식이 조금 더 취향에 맞는다. 물론 단순히 먹을 줄 몰라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별로 생각해보지 않은 부분인데, 의외로 가입형 워드프레스의 글쓰기 환경이 마음에 든다. 이걸로 당분간은 연명할 수 있을 듯 하다.


음악도 들을 시간이 없을 만큼 바쁘게 지내는 것은 아닌데, 이상하게도 좀처럼 여유가 생기지 않는 요즘. 나는 주로 잠자리에 누워서 음악을 즐겨 듣는 편이다. 그렇다 보니 마냥 흥이 나는 음악보다는 차분하고 신비로운 분위기의 음악들을 플레이 리스트에 남겨두는 편인데, 그 중에서도 가장 자주 듣는 곡이 바로 Spiritualized의 Ladies And Gentlemen We Are Floating In Space 이다.


우리는 지금 우주에 있다고 나지막히 속삭이는듯한 목소리로 시작하는 이 노래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어느새 제목 그대로 저 넓은 우주를 유영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히고 만다. 그리고 그렇게 스르륵 잠이 드는 것이 최근들어 생긴 나를 행복하게 하는 취미 중 하나이고 말이다. 약간의 과장을 보태면 푹신한 침대에 누워 잠이 들락 말락하는 몽롱한 상태에서 듣는 Ladies And Gentlemen We Are Floating In Space는 천국과도 같이 평화롭고 아름답다.




처음 듣는 사람들에게도 이 곡이 낯설지 않은 이유는 Pachelbel의 Canon in D 와 Elvis Presley의 Can't Help Falling In Love 이라는 클래식한 명곡들을 샘플링하였기 때문이다. 이제 Spiritualized의 Ladies And Gentlemen We Are Floating In Space가 우리 시대의 클래식으로 남을테니, 클래식이 클래식을 만들어낸 셈이다.


Spiritualized의 <Ladies And Gentlemen We Are Floating In Space>, Radiohead의 <OK Computer>, The Verve의 <Urban Hymns>, Blur의 <Blur>가 모두 한 해에 발매되었다는 그 시절의 영국은 대체 어떤 나라였을까 궁금하다. 사람 사는 곳은 물론 다 거기서 거기겠지만 더쿠로써 자연스럽게 드는 살아볼 수 없는 시절에 대한 그리움은 어쩔 수 없는 일인가 보다.


언제부터인가 퍼스널 컬러라는 것이 사람들 입에 자주 오르내리게 되었다. 웜톤이니 쿨톤이니 하는 말들이 낯설게 느껴졌던 시절도 있었는데 이제는 드럭스토어에 가서 파운데이션 하나를 고를 때 조차 웜톤 용, 쿨톤 용이 표기되어 있는 것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점점 이 톤이라는 것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여기 저기서 얻어 들은 지식으로는 단순히 하얗다고 쿨톤, 노란기가 돈다고 웜톤이 아니라 자신의 피부에 형광등을 밝혀주는 색조합을 찾는 것이라고 하던데 그냥 글로만 읽어서는 한없이 막연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지난 휴가 때 친구와 함께 퍼스널 컬러를 진단받으러 다녀왔다. 


1. 검사는 맨 얼굴로

아무것도 올라가지 않은 맨 얼굴로 거울을 보니 자존감이 수직 하락하는 것이 느껴졌으나, 아무것도 덧바르지 않은 피부로 확인을 해야 본연의 톤을 찾을 수 있고, 거기다 화장을 한다 해도 시간이 지나가면 본인의 원래 피부 톤이 드러나기 때문에 원래 피부톤에 맞춘 컬러 스타일링을 해야 하루 종일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는 말에 납득하고 맨 얼굴로 거울 앞에 앉았다. 한 가지 다행이었던 점은 염색모가 아니여서 두건은 피할 수 있었다는 것. 두건까지 썼으면 자존감이 0으로 떨어졌을 것 같다.


2. 생각보다 신기한 색채 효과

드레이프 천을 하나씩 두를 때마다 어떤 색은 다크가 심해보이고, 어떤 색은 팔자 주름이 도드라져 보이는 등 실제로 눈에 보이는 변화가 느껴져서 굉장히 신기했다. 내가 진단받은 톤은 여름, 그 중에서도 고명도/저채도의 페일 색상이 주를 이룬다. 그래서 대부분의 따뜻한 느낌의 색들이 어울리지 않는데, 실제로 황색 계열 천을 가져다 댈 때 마다 낯빛이 홍당무처럼 빨개지는 것이 보였다. 주정뱅이 얼굴 같다며 같이 간 친구에게 놀림을 받았을 정도.


여러 천을 대보고 찾아낸 나의 베스트 컬러


3. 나의 베스트 컬러 찾기

드레이프 천으로 검사를 마친 뒤, 가져다 댔을 때 얼굴이 가장 환해보이고 혈색이 좋아 보이던 컬러들을 모아 나만의 베스트 컬러 콜렉션을 만들었다. 나의 경우 전반적으로 페일 컬러가 어울리지만 그 밖에 소프트와 그레이쉬에서도 베스트로 사용할 수 있는 컬러가 일부 있었다. 다른 업체에서 퍼스널 컬러를 진단받은 적이 없어서 비교할 수는 없지만, 조금 더 세밀하게 색을 찾아주는 것 같아서 좋았다.




4. 화장품 진단 시간

검사를 마친 후 가져간 화장품이 나의 톤에 적합한지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보통 그 때 대대적인 화장품 교환식이 이뤄지고는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나도 친구와 립을 하나씩 교환했다. 나는 지금까지 내가 가을 톤의 립들만 샀다고 생각했는데 생각과 달리 그냥 사용해도 될 것 같다는 진단을 받아서 흡족했다. 아마도 소프트와 그레이쉬 쪽 컬러들이 가을 뮤트 컬러와 어느정도 호환 가능하기 때문이 아닐까 혼자 생각해 본다.


5. 마무리

개인적인 생각은 결국 이런거 다 필요없고 사고싶은 색 제품을 사면 된다는 것이지만, 그래도 한번쯤 이런 진단을 받아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나에게 어울리는 색이 어떤 것인지 정확히 알고 있다면, 나와 맞지 않는 컬러의 제품을 구입할 때도 어느정도 고려할 수 있을테니 말이다. 이제 톤팡질팡은 끝이다.


그것 (It, 2017)

직접 보기도 전부터 그것은 나에게 꽤 핫한 영화였다. 오래 전 TV 영화로 방영되었던 그것(1990년 작)을 매우 인상깊게 본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북미에서의 예상을 뛰어 넘는 스코어 역시 나의 기대감에 양념을 조금 더 치긴 했다.) 구작을 가만히 떠올려 보면 그리 퀄리티가 좋은 영화는 아니었지만, 팀 커리가 연기한 페니와이즈 만큼은 내 기억 속에 강렬한 족적을 남겼다. 그의 페니와이즈 덕분에 전에 없던 삐에로 공포증이 생겼을 정도이니 말이다. 어쨌든 이러한 추억 때문에 새롭게 리메이크된 그것에 대한 나의 기대감은 점점 더 커져만 갔고, 개봉을 기다리며 기대치가 극에 달했을 무렵 한 리뷰를 접했다. "이 영화는 호러 영화가 아니라 성장 영화이다." 스포일러 당할까봐 내용은 자세히 읽어보지 못하고, '이게 무슨 말이지?'하는 의문을 가지고 극장을 찾았던 기억이 난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영화는 성장 영화가 맞았다. 공포감을 불러 일으키는 장면들 역시 존재하기는 했지만 그 보다는 루저 클럽 아이들이 자신의 공포심을 극복해내고 한 걸음 더 성장하는 데에 포커스가 맞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조금 더 세밀하게 따져 보자면 성장 영화에 약간의 호러 시즈닝을 첨가한 정도랄까. 그래서인지 각 등장인물들에게 보다 명확한 캐릭터성과 서사가 부여되어서 구작에 비해 루저 클럽 멤버들에게 감정을 이입하고, 공감하는 것이 더욱 쉬웠다. 이 점은 개인적으로 매우 좋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이다. 성장에 포커스를 맞추고 감상한다면 꽤 훌륭한 영화이기까지 하다. 몇몇 장면들은 약간 감동적이기도 하고 말이다.


그러나 호러의 측면에서는 아쉬운 부분들이 꽤 있다. 그 중에서도 내가 가장 아쉽게 생각하는 부분은 페니와이즈이다. 그는 사람들이 그를 두려워할 수록 더욱 강해지는 괴물인데, 그런 것 치고는 영화에서 우스운 꼴로 등장할 때가 너무 많았다. 그 중에서도 베벌리를 납치해간 뒤 춤을 추면서 등장하는 부분은 지나치게 우스꽝스러워서 탄식을 자아냈을 정도이다. 거기다 마지막에는 아이들에게 물리적으로 집단 구타를 당하는데, 이 부분 역시 루저 클럽 관점에서는 통쾌한 한방이었지만 호러 영화를 기대하는 관객 입장에서는 약간 아쉬운 부분이었다. 아이들이 더 이상 페니와이즈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꼭 구타로 표현했어야 하는 걸까 싶기도 하고.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신작의 페니와이즈가 아주 형편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가 조용히 등장하거나(하수구, 집 지하실 등) 루저 클럽 한 명, 한 명에게 그들이 제일 무서워하는 것으로 나타나서 공략해 나갈 때는 꽤 공포스러웠다.


이제 영화를 본지 너무 오래되어서 자세히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자막에서도 몇가지 수정되었으면 했던 부분이 있었던 것 같은데, 빌이 조지인척하는 페니와이즈를 알아차리는 장면이 그 중 하나이다. 영화 초반부에 빌이 조지에게 종이배를 만들어 주는 장면이 나온다. 그 때 빌은 종이배를 그녀(She)라고 지칭했고, 조지 역시 그것을 재미있어하며 그대로 따라한다. 그런데 조지로 변장한 페니와이즈는 종이배를 가르켜 그것(it)이라고 말한다. 이것을 보고 빌은 조지가 가짜라는 것과 동생이 이미 죽었다는 것을 확신하고 망설임 없이 방아쇄를 당긴다. 자막으로 구현해내기 그리 어려운 부분은 아니었을 것 같아서 아직까지도 아쉬운 점으로 기억되는 장면이다.


세상에서 제일 무섭고 크리피한 삐에로는 팀 커리의 페니와이즈이다.


구작이 호러에 성장을 첨가한 영화였다면, 신작은 성장에 호러를 첨가한 영화이다. 영화에 어떤 것을 기대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평이 달라지기는 하겠지만, 나에게는 꽤 만족스러운 영화였다. 호러 부분이 약간 아쉽긴 하지만 그 대신 루저 클럽의 친구들을 알게 되었고 그들이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 즐거웠다. 거기다 전체적인 완성도 역시 신작이 조금 더 나은 것 같고. 그러나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삐에로가 팀 커리의 페니와이즈인 것은 변함이 없다. 그리고 앞으로도 변함이 없을거라고 확신한다.